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제1차 진주성 전투 (문단 편집) === 10월 9일 === 9일 왜군은 공격군을 다수의 소부대로 나누어 편성한 다음 진주성 외곽에 있는 조선군 지원 부대 공격에 나서는데 이러한 병력 분산 작전은 전력을 약화시켜 의병 부대들에게 유리한 결과만 선사하게 된다.(왜군은 의병장 김준민 등에 격퇴당해 큰 손실을 입는다.) 전라도 의병장 최경회 부대 등도 도착해 성 바깥에서 성 안 수비군과 호응하며 왜군을 압박하였다. 이에 왜군은 공성 작전을 바꾸는데 대나무 다발과 연결 사다리를 많이 준비한 다음, 토성을 쌓고 누대를 세워 한 부대가 그 위에서 성 안으로 [[총]]을 쏘아대는 동안 나머지 부대가 대나무을 엮어만든 타케타바(竹束)[[https://blogimg.goo.ne.jp/user_image/4f/f8/5ffdf59df321392aa1030eb0ef148375.jpg|##]][[http://thumbnail.egloos.net/600x0/http://pds21.egloos.com/pds/201712/20/86/f0049186_5a39ad9c03284.jpg|###]]를 방패로 하여 사다리를 들고 성으로 접근하였다. 그러나 큰 피해를 입고 후퇴했다. 공성에 계속 실패하자 계략을 써서 성안 수비군을 밖으로 유인해 내기로 하는데, 밤에 여기저기 모닥불을 피워 어둠을 환하게 밝혀놓고는 거짓 퇴각을 하는 척 했다. 그러나 왜군에게 잡혀 있던 조선 아이 한 명이 탈출하여 성문으로 달려가니 문을 열어 들어오게 한 뒤 적의 실정을 물었고, 아이가 “내일 새벽에 총공격을 한답니다”고 알려주었다.[* [[https://blog.naver.com/pictured/220797666345|이 일화를 각색한 단편 만화도 존재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